비 오는 날이면 자주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앞 작은 공원에서의 일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주 만났고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다른 날과 달랐다.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비가 내렸고 우리는 우산도 없이 빗속에 서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백을 하려고 했다. 마음 속 깊이 숨겨둔 말을 꺼내려는 순간 비는 더욱 거세졌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젖어 얼굴에 달라붙었고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막상 입을 열려고 하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먼저 말했다. "비 오는 날은 항상 특별해. 마치 세상이 우리만을 위해 멈춘 것 같아." 그녀의 목소리는 비와 어우러져 더욱 고요하고 아련했다. 나는 고백 대신 그녀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맞아 ..
시간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시간을 연속적인 순간들의 흐름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시간은 고정된 틀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린 시절의 시간은 느리고 길게만 느껴졌다. 초록 잎사귀가 바람에 살랑이는 것을 보며 구름이 하늘을 여유롭게 횡단하는 것을 바라보며 시간은 마치 영원히 멈춘 것만 같았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시간의 속도는 빨라진다. 늘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시간은 마치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 버린다. 어느새 노을이 진 하늘을 바라보며 젊은 날의 꿈과 사랑 그리고 추억들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그때의 시간은 마치 금방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또 다른 삶의 깊이를 선사한다. 시간은 또한 기다림의 연속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
겨울의 끝자락 마지막 눈이 내린 날 마을 아이들은 눈으로 오리를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오리는 아이들이 '스노윙'이라고 부르는 눈오리였습니다. 스노윙은 아이들의 사랑과 즐거운 웃음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존재였죠. 그러나 스노윙은 봄이 오면 녹아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스노윙은 아이들이 물가에서 수영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노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상상일 뿐, 곧 찾아올 봄과 함께 그의 시간도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노윙은 숲 속에서 빛나는 요정을 만났습니다. 요정은 스노윙의 순수한 마음과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에 감동하여 그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네가 그토록 원하는 여름을 경..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에 달빛 요정이 살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루나였어요. 매일 밤이 되면 루나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마을을 밝히는 달의 힘을 빌려 밤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을 인도했죠. 루나는 특별한 힘을 가진 요정이었습니다. 그녀는 달빛을 모아 마법의 지팡이에 담을 수 있었어요. 밤이 깊어질수록 그녀의 지팡이는 더욱 빛나기 시작했고 그 빛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불빛이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루나를 '밤을 지키는 요정'이라고 부르며 사랑했어요. 아이들은 밤에 루나가 지켜본다는 생각에 안심하며 꿈나라로 떠났죠. 루나는 밤이 깊어도 결코 쉬지 않았어요. 그녀는 알고 있었거든요. 밤이 가져다주는 고요함 속에서도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밤, 마을에 짙은 안개가 ..
한 조용한 마을의 한 켠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찬 작은 우물이 있었습니다. 우물 속에는 '빛나'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물방울이 살고 있었습니다. 빛나는 우물 안에서만 살다 보니 바깥 세상이 너무나도 궁금했습니다. 어느 따뜻한 봄날, 빛나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태양의 따스한 햇살이 우물의 수면을 비추자 수많은 물방울 친구들이 하나둘씩 수증기가 되어 하늘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바깥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빛나는 소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빛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햇살이 빛나를 간지럼을 태우며 따뜻하게 감싸자 그녀는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신기한 마법에 걸린 것처럼 천천히 우물 위로 떠올랐고 결국 하늘로 향하는 수증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
남극 대륙의 가장 남쪽 끝 얼음과 눈이 황홀한 경관을 이루는 곳에 코코라는 호기심 많은 펭귄이 살고 있었어요. 코코는 다른 펭귄 친구들과 달리 언제나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꿈을 꾸곤 했습니다. 코코의 마음속에는 항상 모험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차 있었죠. 어느 날, 코코는 바다의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용감하게도 무리를 떠나 홀로 모험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코코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섰어요. 코코는 쉴 새 없이 헤엄쳐 많은 날과 밤을 바다 위에서 보냈어요. 남극의 차가운 물결을 떠나 점점 따뜻해지는 바닷물에 놀라면서도 코코의 호기심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굉장히 강한 해류에 휩쓸리고 말았죠. 해류는 코코를 멀..
봄날의 아침이 밝았다. 따스한 햇살이 숲속 곤충들을 깨웠고 오늘 있을 큰 행사인 곤충 친구들의 피크닉 준비에 분주했다. 각자의 특기를 살려 피크닉을 준비하는 모습은 마치 잔치를 준비하는 마을과도 같았다. 개미 군단은 이미 아침 일찍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강한 팀워크로 유명한 그들은 피크닉 장소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모두가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나뭇잎을 운반했다. 또한, 미리 잘라둔 달콤한 과일 조각들과 아침 이슬을 머금은 싱싱한 잎사귀들을 가지고 왔다. 꿀벌들은 피크닉의 달콤한맛을 책임졌다. 꿀벌들은 꽃에서 꿀을 채취해 달콤한 꿀물을 준비했고 꿀물은 피크닉의 음료로 제격이었다. 꿀벌들의 꿀은 곤충들 사이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였다. 나비들은 자신들의 아름다운 날개를 활용해 장식을 담당했다. ..